절간 2025. 9. 26. 02:59

공과대학 건물에서 법학대학 건물로 가는 길에 말이지. 제노가 커튼을 거칠게 닫으며 말했다. 썩기 직전의 헝겊을 기워 만든 커튼은 창문보다 한 뼘 작아 바깥의 불빛을 전부 가려주지 못했다. 그는 스탠리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한참 바라봤다. 그러다 불현듯 고쳐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을 넘어 그를 향해 다가갔다. 스탠리는 바보처럼 두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커다란 나무가 한 그루 있었어. 버드나무처럼 가지가 처져서 그쪽을 지날 땐 키가 작은 나라도 고개를 숙여야 했지. 공들인 헤어 세팅이 망가지면 아깝잖아.

내가 시인이나, 하다못해 문학부 학부생이었다면 ‘자연이 우리를 겸손하게 하네’ 같은 유려한 문장으로 포장할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과학자지. 그래서 언제 한번 날을 잡고 가지를 부러뜨려 버렸어.

그의 짧고 어두운 그림자가 바닥에 선을 그었다. 벽난로의 불덩이가 흐물흐물 움직일 때마다 제노의 실루엣도 함께 춤을 췄다. 발굽 달린 짐승 같은 그림자를 꼬리처럼 단 제노는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지금 그는 이 세계와 완전히 동떨어진 다른 곳에 존재했다. 오로지 이런 사람들만이 파괴의 매력을 이해한다. 한없는 어둠이 얼굴을 따라 아침 햇살처럼 파고들었다. 스탠리는 공연히 그에게 모든 것을 주고 싶어졌다. 당장 이 캐빈 밖으로 달려 나가 내가 했다고, 내가 했노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 싶어졌다. 그러나 이것은 제노의 신화다.

그래서 스탠리는 목이 쉬도록 외치는 대신 덜덜 떨리는 팔로 제노를 꽉 끌어안았다. 나는 당신을 믿어. 너를 믿어, 제노... 너는 할 수 있어.

제노는 잘 해낼 것이다. 스탠리는 알고 있다. 그는 아마 자기 죄보다도 지문이 잔뜩 묻어 불쾌하게 번들거리는 유치장 쇠창살의 용접 상태에 더 집중하고 있을 것이다. 제노는 잘 견뎌낼 것이다. 그리고 가까운 미래, 멀지 않은 언젠가, 약속했던 것처럼. 마법처럼 다시 그의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러니 괜찮다.